한국 전통 마을에는 마을의 수호와 공동체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세워진 상징적 조형물이 있습니다. 바로 장승과 솟대입니다. 이들은 단순한 장식물이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마을 사람들의 신앙과 삶을 반영해온 상징물이자 예술작품입니다. 본문에서는 장승과 솟대의 기원과 기능, 조형미,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 이들이 어떻게 계승되고 있는지를 심층적으로 다뤄봅니다.
마을 수호신으로서의 장승과 솟대
장승은 일반적으로 마을 입구나 길목, 사찰 어귀 등에 세워지며, 외부에서 들어오는 재앙이나 잡귀를 막는 역할을 합니다. 주로 남성과 여성 한 쌍으로 세워지며 각각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이라는 명칭이 새겨집니다. 이 명칭은 단순한 이름이 아니라, 하늘과 땅을 지키는 신적인 존재로서의 권위를 상징합니다.
장승의 외형은 대체로 위엄 있는 얼굴, 날카로운 눈매, 두꺼운 입술, 이빨을 드러낸 입 등으로 구성되며, 이는 악귀를 물리치는 힘의 시각적 표현이라 볼 수 있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장승을 통해 외부 세계와 경계를 설정하고, 내부 공동체의 결속과 안정을 도모하고자 했습니다.
솟대는 장승과 비슷한 맥락에서 설치되지만, 형태와 기능에서 조금 다릅니다. 솟대는 긴 장대 끝에 나무로 깎은 새 모형을 얹은 구조로 되어 있으며, 주로 두루미나 학처럼 수명을 상징하는 새가 사용됩니다. 이는 하늘과 인간 사이를 이어주는 매개체로 작용하며, 마을의 풍년과 자손 번창을 기원하는 상징적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솟대는 ‘솟다’라는 말처럼 높은 곳으로 올려 신에게 기도를 올리는 의미를 담고 있어, 마을의 제천의식(祭天儀式)이나 풍요제 등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습니다. 장승이 지상을 지키는 수호신이라면, 솟대는 하늘과 연결되는 제사의 통로라 할 수 있습니다.
조형미와 민속 예술로서의 의미
장승과 솟대는 각각 고유의 조형적 특색을 지니며, 민중의 예술혼이 투영된 민속 조형물입니다. 조각된 나무, 깎인 돌, 채색된 표정 하나하나가 특정한 시대와 지역의 미적 감각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장승의 경우 지역마다 조형미가 매우 다양합니다. 경상도 지역에서는 강하고 날카로운 인상이 많은 반면, 전라도 지역에서는 익살스럽고 유머 넘치는 표정의 장승이 많이 발견됩니다. 강원도에서는 소박하고 단순한 형태가 주를 이루며, 충청도에서는 사실적인 얼굴 조형이 특징입니다.
장승에 새겨진 글씨 또한 조형 요소로 작용합니다. “천하대장군”이나 “지하여장군” 같은 문구 외에도, “○○마을 경계지”, “이곳을 지킴” 등의 글귀가 함께 새겨지며, 이는 신앙적 기능뿐만 아니라 마을의 경계 표시, 경고 표지, 안내문 등의 기능을 복합적으로 수행하였습니다.
솟대는 조형적으로 더 단순해 보이지만, 장대의 선, 새의 실루엣, 바람에 흔들리는 움직임 등을 통해 미니멀하면서도 상징적인 아름다움을 전달합니다. 솟대에 올라탄 새의 방향이나 자세, 숫자 역시 마을의 염원에 따라 달리 설정되며, 자연과 조화된 조형미를 구현해냈습니다.
이러한 조형물들은 대개 마을의 장인, 혹은 목수가 직접 만들어 왔으며, 특정한 예술 교육을 받은 이들이 아니라도 지역의 미의식과 공동체의 세계관을 투영해낸다는 점에서 민속 예술의 진정성을 잘 보여줍니다.
현대에서의 재해석과 문화콘텐츠화
현대에 들어 장승과 솟대는 실질적인 신앙 대상으로서보다는 문화유산, 관광 자원, 공공미술로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다양한 축제와 전시가 열리며, 이 조형물들을 매개로 마을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전라남도 영광군의 법성포 장승제가 있습니다. 이 축제에서는 해마다 새로운 장승을 깎아 세우고 마을 주민이 모여 굿과 제례를 진행하며, 장승에 담긴 신앙과 공동체 의식을 계승합니다.
또한 경상북도 안동의 하회마을과 민속촌 등에서는 솟대를 중심으로 테마 거리를 조성하여 관광객들에게 전통 신앙과 민속 조형미를 체험하게 합니다. 이외에도 지역 교육청과 문화재단에서는 장승 만들기 체험, 솟대 세우기 워크숍 등을 운영하며 전통 교육 자원으로 적극 활용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공공미술 프로젝트에서도 장승과 솟대의 형상이 등장합니다. 도시 재생이나 마을 경관 정비 사업에서 이 조형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공원, 거리, 골목에 설치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으며, 이는 지역의 정체성과 주민들의 문화적 자부심을 높이는 데 기여합니다.
무엇보다 이 조형물들은 청소년 정체성 교육, 세대 간 문화 전승, 마을 공동체 회복 등에서 중요한 실천 도구로도 활용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마을 어르신들과 함께 장승을 새기거나 솟대를 세우는 활동은 단순한 체험을 넘어 지역사회의 연결성과 연대감을 되살리는 계기가 됩니다.
결론: 요약 및 Call to Action
장승과 솟대는 수백 년 전부터 이어져 온 마을 신앙의 상징이며, 민중의 예술적 감각이 담긴 조형물입니다. 그들은 마을의 경계를 지키고, 사람들의 마음을 모으는 구심점 역할을 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단절된 공동체성과 지역 정체성을 회복하는 중요한 문화 자산으로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가까운 민속촌이나 전통 마을에서 장승과 솟대를 만나보세요. 거기엔 단지 옛사람들의 종교심이 아닌, 함께 살아가고자 했던 공동체의 정신과 미적 감각이 깃들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잊고 있던 ‘같이’의 가치를 이 조형물들이 다시 일깨워 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