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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장에 남은 조선 상인들의 장사 규칙

by k2109k19 2025. 6. 3.

우리나라 전통시장은 단순한 거래의 공간을 넘어 공동체의 삶이 녹아든 공간이었습니다. 특히 조선시대 상인들은 단순히 돈을 버는 것을 넘어 신뢰, 도덕, 질서 속에서 장사를 운영해 왔습니다. 그들이 지켰던 장사의 규칙들은 오늘날 전통시장에도 면면히 이어지며, 상거래의 윤리와 공동체 정신을 유지하는 바탕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조선 상인들이 실천했던 장사 규칙과 그것이 오늘날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는지 살펴봅니다.

 

‘정가제’의 시작, 흥정 없는 가격 신뢰

조선시대 후기부터 형성된 상업문화 속에서 일부 상인들은 ‘정가제’를 시행했습니다. “정직하게 한 값에 판다”는 의미로, 흥정이 불가능한 대신 공정한 가격을 책정하여 손님에게 신뢰를 주는 방식이었습니다. 특히 성균관 앞에 위치한 유서 깊은 종로 장시나 대구 약령시 같은 상권에서는 ‘서로 속이지 않는다’는 상도(商道)의 기풍이 강했습니다. 이를 ‘상도덕’이라 하여 상인끼리 가격 담합이 아닌 공정 거래 원칙을 자율적으로 정해 운영한 것입니다. 오늘날 전통시장의 일부 상인들도 “흥정 없이 한 가격”이라는 문구를 내걸며, 조선시대의 정가제 정신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가격표를 정확히 제시하고, 속이지 않는다는 약속은 단순한 마케팅이 아니라 오랜 상업 윤리의 계승입니다.

전통시장에 남은 조선 상인들의 장사 규칙

‘도량 큰 장사꾼’의 미덕, 덤과 신용거래

조선시대 장사꾼은 물건을 많이 파는 사람보다 ‘도량 큰 상인’을 더 높이 평가했습니다. 장삿속을 내세우기보다 ‘한 되 더 주고, 정(情)을 담아 판다’는 방식이 선호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장날에 쌀을 파는 상인이 손님에게 조금 더 퍼주는 ‘덤 문화’는 단순한 서비스가 아닌 상호신뢰의 상징이었습니다. 이는 구매자에게 “이 상인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자연스럽게 단골을 확보하는 지혜였습니다. 또한 조선 후기에는 ‘외상’과 ‘외상장부’가 활발히 사용되었습니다. 상인이 손님의 신용을 믿고 나중에 결제를 받아주는 구조였고, 이 신용은 공동체 내에서 평판과 연결되어 매우 중요한 자산이었습니다. 오늘날 전통시장의 상인들도 여전히 ‘덤 문화’와 ‘외상 거래’를 실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대형마트나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느낄 수 없는 인간적 신뢰와 정서적 교류의 전통을 계승하는 방식입니다.

 

상인 조합과 장터 규칙, 자율적 질서의 역사

조선시대 장시(場市)에는 상인들끼리 만든 규약과 조합이 존재했습니다. 이를 ‘계(契)’라고 부르며, 가격 안정, 장소 배정, 분쟁 조정 등의 기능을 수행했습니다. 이는 현재의 상인회나 상가번영회와 유사한 구조로, 질서 있는 상거래 문화를 유지하는 자율적 장치였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조선후기 18세기 경기도 지역의 문서인 『장시계약문』입니다. 이 문서에는 “노점 자리는 매월 돌아가며 순번을 정한다”, “말다툼이 생기면 중재인을 세운다”, “비싸게 받는 이는 쫓아낸다”는 규칙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이러한 전통은 오늘날 전통시장 상인회에서도 이어지고 있으며, 장날 개장 시간, 차량 통행 시간, 쓰레기 처리 등 자율적으로 정한 규칙을 운영하는 기반이 됩니다. 시장이 단지 ‘개별 상인의 생계 공간’이 아닌, 공동체 전체의 삶터였다는 조선시대 인식이 현대에도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조선시대 상인들은 장사를 단순한 생계수단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정직과 신뢰를 기반으로 공동체 안에서 존중받는 역할을 해냈고, 이러한 장사 규칙들은 오늘날 전통시장의 인간적인 분위기와 연결됩니다. 경제의 논리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정(情)의 문화’, 그 안에 깃든 조선 상인의 철학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