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이라는 개념은 현대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조선시대에도 대중을 위한 정보 전달 수단이 존재했으며,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방각본’입니다. 한양과 주요 도시에 위치한 방각(坊刻)에서 인쇄·배포된 이 책자들은 오늘날로 치면 일간지와 대중잡지의 역할을 동시에 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조선 후기 방각본이 어떤 콘텐츠를 담았으며, 당시 대중문화의 흐름을 어떻게 반영했는지, 오늘날의 트렌드 감각과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를 살펴봅니다.
방각본이란 무엇인가: 조선의 거리 신문
‘방각본(坊刻本)’은 글자 그대로 ‘거리에서 간행된 책’입니다. 왕실이나 관청에서 간행한 국립본과 달리, 민간 인쇄소에서 상업적 목적으로 만들어졌으며, 저잣거리, 장터, 찻집 등에서 누구나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이들 책자에는 실용적이고 대중적인 내용이 가득했습니다. 예를 들어 『토정비결』, 『한글판 춘향전』, 『기산풍속도설』 등 운세, 연애, 유행하는 소설, 세태 풍자 등이 담겨 있어 당시 사람들의 관심사를 고스란히 반영했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SNS에서 확산되는 트렌디한 콘텐츠를 지면으로 옮겨 놓은 셈입니다. 방각본의 가장 큰 특징은 한글 위주의 쉬운 문장과 짧은 구성입니다. 이는 글을 배우지 못한 서민층과 여성 독자도 자연스럽게 소비할 수 있도록 고려된 전략으로, 당시 조선 사회의 문자 보급과 문화 소비 확대에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연애, 운세, 풍자… 지금도 통하는 콘텐츠
방각본에서 가장 인기를 끌었던 분야는 단연코 ‘연애 이야기’와 ‘운세 풀이’였습니다. 『춘향전』, 『심청전』, 『장화홍련전』 등은 원래 구전되던 이야기가 방각본을 통해 대중 소설로 정착하게 되었고, 이후 전국으로 퍼지며 문화 코드로 자리 잡았습니다. 또한 『토정비결』, 『명리학 입문』 등은 매년 정초가 되면 사람들 사이에서 구입이 급증했던 ‘운세 콘텐츠’였습니다. 이는 오늘날 인터넷 운세 보기, 신년 타로, 사주 앱과 동일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풍자와 시사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당시 방각본에는 관료의 부패, 양반의 허세, 유교적 위선 등을 비꼬는 내용이 많았고, 삽화와 함께 대중의 웃음과 비판 의식을 자극했습니다. 이는 지금의 웹툰이나 정치 풍자 유튜브 콘텐츠와 유사한 흐름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방각본은 조선 후기 대중문화의 흐름을 선도했으며, 그 안에 담긴 감정과 흥미 요소는 2020년대의 콘텐츠 소비 패턴과도 흥미롭게 맞닿아 있습니다.
방각본의 유통과 독자, 문화의 확산 구조
방각본은 조선 후기 한양, 평양, 전주, 대구 등 주요 도시에서 제작되었습니다. 인쇄는 주로 목판화 방식으로 이뤄졌으며, 가격도 저렴해 일반 서민층도 쉽게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한 권을 여러 사람이 돌려 보거나, 시장 바닥에 펼쳐 놓고 낭독하는 방식으로 소비되었으며, 글을 모르는 사람을 위한 구술 낭독자도 존재했습니다. 특히 여성 독자층의 등장은 방각본이 단순한 문서가 아닌 ‘대중문화 플랫폼’이었음을 보여줍니다. 당시 여성들은 문학이나 시사에 접근하기 어려웠지만, 한글 위주의 방각본을 통해 문화적 참여가 가능해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방각본은 지역 간 유통을 통해 한양의 트렌드를 지방에 전달하는 역할도 했습니다. 이는 오늘날 K-콘텐츠가 유튜브와 SNS를 통해 글로벌로 확산되는 구조와 유사한 방식입니다. 인쇄술과 구술 문화의 결합, 저렴한 가격, 빠른 유통은 조선 후기 콘텐츠 시장의 핵심 요인이었습니다.
방각본은 조선시대의 종이 미디어이자, 대중문화의 거울이었습니다. 연애, 풍자, 운세, 일상의 고민을 담은 이 작은 책자들은 단순한 오락물이 아니라, 그 시대의 정서와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는 문화 유산입니다. 지금 우리가 스마트폰으로 읽는 뉴스와 콘텐츠도, 결국은 방각본이 걷던 길 위에 있는 셈입니다. 전통 속의 대중문화, 그 원형은 생각보다 더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